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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의 생각] 옥중 순국한 신채호의 꿈처럼 역사에서 희망을 찾는 대통령을 요구한다!

대한민국 헌정회 부산지회 한효섭 회장.

국민의 마음은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고 생활고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청년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을 꿈꾸며 활동하는 예비후보들은 과연 역사의식과 철학이 있으며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하는 의심이 든다. 못마땅해 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와 한숨 소리는 늘어만 가고 있는데 구체적인 정책과 비전은 없고 상대후보 비난과 비방으로 흠집만 내고 있는 듯하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자랑보다 상대후보 비난만 하는 지지자를 보니 뜻있는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역사의식과 철학이 있는 대통령이 그리워지는 요즘 해방 76년이 되었는데도 교육부는 일본식민지 정책을 위해 일본총독부에서 100년 전에 만든 조선사를 아직까지 정설로서 초등학교부터 가르치고 있다. 식민사관 사대사관 사학자와 공직자를 청산하지 못한 대통령을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한국대통령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으며 이를 방관하는 진보주의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의 시민운동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상을 모르고 뿌리와 민족정신을 모르고 정체성과 자존심이 없이 사리사욕과 탐욕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지하에서 선열들이 피눈물로 통곡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민족정신과 자존심을 일깨워 주었고 고조선, 단군, 부여, 고구려 정신의 주체적 민족주의사관으로 한국 상고사를 정립하여 왜곡 날조한 한국사를 바로잡고자 헌신한 누군가가 생각난다. 일제강점기동안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며 얼굴은 꼿꼿이 세운 채 세수를 하였으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을 하다 옥중순국하신 독립 운동가이며 언론인이며 역사학자인 정치인 단재 신채호 선생, 그의 정신과 애국심이 그리워진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13살까지 '자치통감'을 해독하고 '사서삼경'을 독파하며 행시(行時)를 지어 신동이라 불렸다. 22세 때 신규식이 설립한 문동학원의 강사로 부임하여 신교육을 위한 계몽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개화자강 사상가로서의 자기 혁신 모습을 보여주었다. 1905년 26세에는 성균관 박사가 되어 공직을 포기하고 <황성신문> 논설기자로 입사, 1906년에는 <대한매일신보> 논설기사로 입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주필로 당당한 시론을 써서 민중계몽과 항일언론운동전개와 우리나라역사관계 사론을 써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28세 때 양기탁, 이동녕, 이동휘, 안창호, 전덕기, 이승훈 등과 한일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식하였다. 30세 때 윤치호, 안태국, 최남선, 박중화 등과 신민회 방계조직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발기하고 취지서를 집필하였다. 1910년 봄에는 평북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와 안동현(安東縣)을 거쳐 산둥반도 칭다오에 도착하여 신민회동지와 함께 청도회의에 참석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 윤세복, 이동휘, 이갑 등과 광복회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 북만주 밀산을 거쳐 상해로 가서 동제사(同濟社)로 활동하면서 문일평, 백암 박은식, 위당 정인보, 조소앙 등과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세워 교육에 힘썼다.

 

신채호선생은 애국계몽운동과 국권회복운동에 헌신하면서 한국사연구를 통해 민족운동에 앞장섰다.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艸)》 《조선사론(朝鮮史論)》 등을 집필하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힘있게 말했다. 그는 역사에서 희망을 보았으며 역사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찾고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며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으로 위대한 대한민국을 꿈꾸다 1928년 5월 25일 대만에서 체포되어 1930년 대련(다롄)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받고 옥중에서 한국사를 집필하다가 1936년 2월 21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4대강국의 틈바구니 속 풍전등화 같은 위기상황에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인 이 순간에 신채호 선생같은 영웅이 나타나 대통령이 되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유산뿐 아니라 미래의 재산이며 기업이며 정신적 지주이다. 한국과 한국인은 단재 신채호선생처럼 역사에서 희망을 찾는 자주적 역사관을 가진 대통령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모두가 한얼홍익인간정신으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내가 좋아하고 친한 사람 인연이 있는 사람이 아닌 올바른 역사관과 철학을 가진 정직하고 믿음직한 이 시대에 한국 한국인이 원하는 단재 신채호선생같은 훌륭한 대통령을 선출하자고 간절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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