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前 대통령은 지난 2004년 연세대 특강에서 보수에 대해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 놈의 보수를 다 갖다놔도 보수는 바꾸지말자”며, “보수는 힘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 주자, 적자생존 철저히 적용하자, 약육강식이 우주섭리 아니냐는 쪽에 가깝다”고 말해 보수를 수구의 틀을 넘어 기득권 옹호집단으로 규정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얘기하는 것이 기득권 옹호집단 취급을 받게 되면서 심지어는 보수 진영에서 ‘보수’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말자는 주장까지 제기되었고 결국 “자유우파”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용어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면 노 전 대통령 얘기처럼 “보수주의(conservatism)”는 “바꾸지 말자”인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틀렸다, 보수주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상식을 존중하며 “천천히 바꾸자”는게 그 핵심이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원조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국왕 조지3세의 제왕적 독재와 의회의 권력남용에 대해 비판했고,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과도한 과세정책에 반대했다. 결국, 그의 보편적인 원리에 따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메리카를 압박했던 영국은 결국 ‘미국’이라는 신생 독립국을 허용하게 되었고 이후 쇄락의 길을 걷게 된다.
또한,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시민혁명을 통해 수백만명이 피를 흘린 결과가 정치적으로는 훨씬 후퇴한 ‘나폴레옹’이라는 제왕적 체제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급진적인 변화는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보수주의’를 주창하게 된 것이다.
과거의 경험과 보편적인 원리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만 충실한 반성하지 않는 집단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국민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직접 경험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조변석개하는 법안과 정책 대신 충분한 대화와 토론, 타협과 조율로 공감가는 정책을 만들자는 것이 “보수주의”이고 2030 젊은 세대들이 보수세력이 집권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보수”를 지지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역사와 조국과 선조들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천천히 그러나 밀도있게 다시 한번 번영의 길에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수가 프랑스의 23배, 일본의 62배, 독일의 67배, 영국의 91배였고, 미국의 경우 2배였으나 통과 건수로는 21배 수준이었고 이번 21대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지난 연말 기준 2만4천여건으로 지난 20대 국회의 두 배 수준이었다고 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적 정치 신념과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면 국회에서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게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테지만, 보수 정당에서조차 법안 발의 건수에 집착하는 걸 보면 보수주의자에게는 여전히 험난한 것이 정치 여정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