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7월 14일은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서 순국한 날이다. 그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하여 고종황제의 특사로 특파되었다. 만국평화회의 의장에게 고종황제의 친서와 신임장인 공고사를 제출하여 한국의 대표로서의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영국과 함께 끈질기고 노골적인 방해를 일삼았고 이준열사 일행은 뜻대로 하기 쉽지 않았다. 이에 이준 열사 일행은 각국 대표와 언론에 일제의 한국침략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폭로 및 규탄하고자 노력하였다. 각국의 많은 언론은 큰 관심을 가졌으나, 통탄하게도 열강은 차디찬 반응만 내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온갖 방법으로 이준 열사일행의 활동을 방해하였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각국 신문기자들에게 우리의 일제의 만행을 폭로한 그들에 대해 각국의 대표들은 공감하지 않았고, 그는 연일 애통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준열사 일행은 힘없는 한국의 현실과 서러움을 절감하고 외교력부재로 자주적인 한국주권은 물론 회의장 출입조차 못한 박대와 홀대 속에 울분을 토해내다 이역만리 헤이그에서 순국하고 한국으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초
말은 자신의 생각을 소리로써 표현하는 것이고 글은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써 표현하는 것이며 음파는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로 표현하고 또한 그렇게 변하게 만드는 엄청난 힘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말하는 대로, 글 쓰는 대로, 표현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살아가고 그대로 변해간다. 그런 모습대로 살고 있고 그들의 자녀들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므로 좋은 말, 좋은 글, 좋은 생각, 좋은 마음, 이타심으로 선하고 베풀며 살아야 성공하고 행복하며 그들의 후손도 행복해 진다고 말한다. 인간은 유유상종의 법칙 속에 끼리끼리 생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끼리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끼리 살게 된다.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과 함께 살려면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으로 좋은 교육과 공적을 쌓아야 하며 선한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좋은 사람이 이기심으로 나쁜 말과 생각과 악행을 저지르게 되면 나쁜 사람과 살게 된다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한글음파이름학이론이며 음파에너지법칙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팔순을 바라보며 쌓은 경험과 임상실험을 통해 믿고 확신한다. 대부분은 오늘날 살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없다. 서로 신세지고 도우면서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은 사회나 국가나 어느 누구에게도 신세진 적이 없고 빚진 것이 없으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떳떳하게 살고 있으며 남의 눈치 안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산다고 말한다. 어쩌면 필자도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필자의 생각과 본심은 아니다. 필자는 항상 부모님의 은혜로 태어났고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배웠고 이웃과 사회의 도움으로 성장하였고 국가의 보호는 물론 많은 사람들로부터 직접간접으로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았기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빚을 갚는다는 자세로 행동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도 어느 누군가 만든 도로, 차, 가구, 물건, 집, 의복, 음식, 교육, 문화 등을 사용하고 학습하며 즐기면서 산다. 이 생각은 항상 마음 깊이 새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결혼 주례를 설 때도 늘 주례사로 하는 말이다. 필자는 내가 잘나서 오늘날의 내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못나고 무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라도, 풀 한
자신의 잘못은 엄격한 기준으로 크게 처벌하고 참회하며 결코 잊지 말고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잘못은 관대하게 처리하고 반성하여 새 삶을 살게 하고 용서는 하되 보복하고 재론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이고 덕목이다. 광복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방군,점령군, 친일파를 운운하며 사회가 시끄럽다. 대선후보와 정치인 및 지식층은 먹고 살기 힘든 국민에게 나아갈 비전 대신 과거에 집착하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꼭 그렇게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비방하고 음해하여 국격을 떨어뜨리고 사회를 혼란시키면서 정권을 유지해야할까 의문이 든다. 정권과 대권을 잡는 방법은 정녕 그것밖에 없는 것인가? 모든 친일파가 마치 역적인 마냥 각인시키는 일이 진정 대권후보와 정치인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인가?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한 정치인은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 달라서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며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새로 출발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발언했다. 이는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과거에 머물러
현재 국민의 최대관심사는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차기 대통령에 누가 당선이 되느냐이다. 국민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우리나라 여·야 대통령후보에 깊은 관심을 가지다 보니 뜻있는 사람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겠다고 여·야 할 것 없이 대선출마의사를 밝히고 있다. 특히 언론에서는 야당 대통령후보의사를 밝힌 사람과 가능성 있는 출마예정자를 두고 자격이 어떠니 명분이 있니 없니 하고 야단법석이다.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은 선거일 기준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만 40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국민이면 누구나 자격이 있다. 입후보 여부는 후보자 각자가 선택할 몫이다. 나라의 운명이 촉각에 달린 비상시국에 공직자와 지도층과 정치인은 물론 국민 누구라도 출마할 명분은 충분하다. 야당후보로 용기 있게 출마하는 그 자체가 명분이 되기도 한다. 다만, 후보자는 출마과정에서 개인이 아닌 국가의 미래와 부강만을 염두하고 현명하게 단일화하는 것이 애국이다. 그 다음 정권교체는 국민의 몫이다. 어느 초선의원은 대선출마의 변(辯)으로 “저는 정치에 입문한 지 이제 겨우 1년이지만, 제가 본 정치판엔 정치는 없고 권력 유지를
정부의 돈으로 주는 재난지원금은 바로 내 돈이고 미래세대의 돈이기에 아끼고 절약해야 하며 꼭 필요한 곳에만 주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기 때문에 사양하고 기부하였던 것이다. 비록 앞으로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신념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 인생에 공짜로 주는 것은 있어도 받는 것은 없다. 필자는 권력과 돈과 명예를 원하는 지배층에게 당부하고 싶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고 가난하고 힘든 약자들의 손발이 되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으로 영광과 행복을 추구하면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있는 재산을 최소한만 남기고 먼저 처분하여 재난지원금이든 후원금이든 기부금이든 어떠한 방법으로 솔선수범하여 소상공인과 더욱 힘든 사람에게 공짜주기를 실천하고 부족할 때 정부 돈으로 재난지원금이든 위로금이든 적당한 이름을 붙여 힘들고 어려운 약자에게 지원하기를 바란다. 그런 아름다운 기사로 정치인과 고위층과 지도자를 보고 싶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동참하는 훈훈한 소식을 기대한다. 위대한 국민 여러분! 세계 10권의 경제대국 국민답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노력으로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고 나보다 더
한국, 한국인, 한겨레, 한민족, 한반도! 도대체 이 한韓은 어디서 왔으며 한국인 나는 누구인가? 주위에 수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물어 보아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필자는 한반도 한민족의 한의 나라 한국에서 태어나서 왜 하필 내 성씨가 한韓인지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환단고기'에서 환국의 환인, 배달의 환웅, 고조선의 단군 환검에서 환이 한韓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 역사연구를 통해 단군왕검의 성은 한韓이고 이름은 왕검이란 기록을 찾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이병도 교수는 고조선을 한씨조선이라 하였고, 임승국교수는 환단고기가 한단고기임을 밝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지에서도 한씨로 대표되는 고조선계 유민의 남하로 인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한韓이라는 명칭이 형성되었으며, 한씨 성을 사용한 무리에 대해 토착 지배 집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의문점이 생겼다. 중국은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이라 나라이름을 중국이라 하였고, 일본은 해가 뜨는 나라라고 일본이라 칭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왜 한국, 한민족, 한반도, 한국인 한韓이라고 명칭을 붙이는지 궁금하였다. 해답은 김진명의 '천년의
오늘따라 한국민족의 영웅 백범 김구선생이 더욱 뼛속 깊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그 수많은 위기와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고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시며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시고 살다 가신 백범 김구선생이다. 그는 청년시절 민족의식이 정립된 후, 일제의 침략 하에 신음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백범의 나라사랑과 겨레 사랑은 일제의 고문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 앞에 섰을 때에도 오히려 강철같은 힘으로 솟아올랐다. 신민회 사건으로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야밤에도 몇 차례나 죽었다 깨어나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철장 안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맞으며 고통의 육신보다 나라를 더 사랑하지 못한 고통에 다음과 같이 반성했다. “처음에 (고문을) 시작한 놈이 불을 밝히며 밤을 새운 것과 그놈들이 온 힘을 다해 자기 일에 충성하던 것을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내가, 남의 나라를 삼키려는 저 왜구들처럼 밤새워 일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온몸이 바늘방석에 누운 듯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혹시 자신에게 망국노의 근성이 있지 않은가 부끄러운 눈물을 눈시
일만 년의 한국 한국인의 역사 속에 가장 참혹한 비극의 역사는 6·25라 단언한다. 3년간에 걸친 비극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었다.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은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측에서는 142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뿐만 아니다. 평범하기만 했던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다 그 처참했던 고통을 이렇게나 잊고 사는 민족이 되었는지, 하늘을 치고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 아닌가? 과거의 잔인무도한 침략자와 전쟁범죄자들을 용서는 하되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6·25에 대해 왜 이토록 무관심하게 된 것인지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가슴아프고 안타깝다. 선량한 백성이 목숨을 빼앗기고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겼다. 아직도 누군가는 그 원한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름도 모르는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바쳤고 세계 유일의 부산유엔묘지에 잠들게 되었다. 그들은 남북통일과 평화를 지키지 못한 아픔으로 땅 속에서 마저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안보
일편단심, 나라와 민족만을 위해 목숨을 바친 단재 신채호선생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역사에서 희망을 보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했다. 필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외면하고 홀대한 민족에게 희망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과 독립유공자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과 국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가족도 이웃도 친구도 사랑도 행복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애국심과 고귀한 정신과 희생적인 죽음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주춧돌이다. 오늘날 4대 열강 가운데 있는 분단된 대한민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고,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치고 있는데, 정부 관리들과 고위층과 지도층과 지식인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가의 앞날을 한 치도 예측하기 힘들다. 못난 후손들 때문에 우리의 광활한 영토 만주대륙을 중국에게 빼앗기고 영해의 기준이 되는 대마도를 일본에게 빼앗기고 찬란한 문화와 유구한 역사를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친일파와 사대주의 관리들과 식민사학자들은 아직까지 식민사관과 사대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을 대국이라 하고 아직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