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절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서양격언인 Honesty is the best policy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말이 기억난다. 그리고 필자의 이버지께서는 초등학교를 나와 가난한 근로자로서 성실근면한 삶을 사신분이지만 필자가 어릴때 항상 정직하게 살아라, 지신과 가족보다 나라와 이웃을 먼저 생각하라. 나보나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라. 솔선수범해라. 그래야 사람이 사람구실을 한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께서는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사람이 제일 큰 죄는 남을 속이고 거짓말 하고 상대에게 피해를 주며 사회를 어지럽히며 약자를 속이는 정직하지 못한것 이라고 특히 강조 하였다. 필자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기면 실천할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다. 그러면서도 혹시 필자 알게 모르게 필자로 인하여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그들이 잘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가를 고민하고 실천할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더 많은 나눔과 봉사를 하겠다고 정치를 시작하였으며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며 정치인의 최고의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이 내 놓는 좋은정책이나 좋은공약들은 좋은약이 입에 쓴것처럼
해마다 맞이하는 개천절은 한韓의 나라가 개국된 날로서 한민족의 생일이자 최대의 경축일이다. 그런 개천절이 되면 왠지 기쁨과 함께 허전함이 가슴을 때린다. 한웅께서 한얼홍익인간정신을 개국이념으로 세운 배달국부터 단군조선으로 이어진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날, 개천절! 충청북도 청원군 소로리에서는 단립벼 볍씨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한반도에서 일만이천년 전 세계 최초로 쌀 재배를 시작하여 농업혁명으로 신석기 농경문화를 시작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위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한국 한국인으로서 개천절의 참뜻을 언젠가부터 정부와 국민들이 등한시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일만이천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세계역사상 유일하게 일만이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대륙한국(대한민국)이다. 그러나 고려말기와 이씨조선에 와서 사대사관에 빠져 이러한 웅대한 민족정기와 정체성과 자긍심을 잃어버리고 노예근성과 식민지근성으로 자존심도 없는 무능한 국민으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강국과 권력에 아부하고 사리사욕과 탐욕에 빠진 위정자 탐관오리들이 나라를 패망하게 하였다. 다행히도 하늘이 도와 유엔군 젊은 피의 대가로 미국의 지원 하에 일만이천년만에 처음으로 국민이 주인되는 자유민주주의 시
“도와주세요.”가 아닌 “살려주세요.”하고 절규하는 소상공인과 서민들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정부가 내리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다가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생존권을 위하여 울부짖는 소상공인과 서민을 보는 심정이 너무나 안타깝다. 오늘날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먹고 살기가 죽기보다 힘들고 어렵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본생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기초적 안정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 어느 호프집 주인은 개인적 이익을 포기하고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하여 2년이나 인고의 아픔을 떠안으며 정부만 믿고 가냘픈 희망으로 삶을 지탱하였다. 그러나 나아질 기미 없이 더욱 옭아매는 정부의 무책임 기약없는 기다림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전세방 전세금을 빼서 직원의 월급을 주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가슴은 찢어진다. 더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고 기자 회견장을 찾아 “도와주세요.”가 아닌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마지막 몸부림치는 소상공인의 간절한 호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으며 무책임한 정부와 정치인의 대책과 작금의 모습을 보면 분노하지 않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는 사대식민사관과 가난과 무지의 대물림으로 세계최고 빈국이고 외침으로 고통 받았다고 느꼈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국 한국인의 역사의식과 철학의 핵심가치는 한얼홍익인간정신이며, 교육과 나눔과 봉사를 통하여 세상을 바꾸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건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신념으로 18세 때 한얼민족연구회(현 한얼공동체, 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와 한얼학당(현 학교법인 한얼교육재단 한얼고등학교, 한얼노인대학, 한얼평생교육원)을 설립했다.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필자에게 통일주체대의원에 입후보하라는 권유가 들어왔고 그 자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마를 결심했다. 필자의 진심이 국민들의 마음에 스민 것일까. 감사하게도 전국 약 2,500명 중 최연소 가득률 1등으로 당선되었다. 물론 나눔과 봉사의 가치에 대한 확신과 신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 깊이 더 낮은 곳까지 밝은 빛을 전해주어야겠다고 결심하고 34세 때 11대 총선에 출마하게 되었다.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이 11명의 후보로부터 셀 수 없는 공격을 받았다. 결국 근소한 차이로 차점으로 낙선하게 되었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보다 역사를 왜곡 날조한 사대식민사관 학자가 훨씬 더 무섭고 악한 이적행위이다. 나라를 빼앗기면 찾을 희망이라도 있지만 역사를 빼앗기고 잃어버리면 되찾을 희망조차 잃게 된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의 자손들은 부자로 호의호식하고 있다. 이병도 식민사학자의 아들은 서울대학교 교수, 손자는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이병도박사는 죽기 전 자신의 학설이 잘못되었다고 양심선언을 하였음에도 그의 제자들중에는 스승을 비판하고 대대로 조선총독부가 만든 왜곡 날조된 역사를 팔아먹으며 해방 75년의 지금까지도 매국행위를 일삼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로인해 한국과 한국인의 역사관이 무너지고 정체성과 자존심을 잃게 하며 점점 패망으로 치닫고 있으니 사대식민사관 학자와 공직자에게 반성과 참회와 성찰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이 반성하고 뉘우친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며 부전자전으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난다. 반면 명성황후의 반대편에서 저항하다 명성황후 저해사건에 동조하여 공을 세운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은 일본으로 도망가서 일본여자와 결혼하여 일본정부의 도움으로 살다
국가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필자는 한마디로 국가란 국민의 행복을 담는 그릇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국민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이다.그러므로 국가와 국민은 따로 생각할수 없고 따로 존재할수없는 한몸의 반쪽씩 찿이하고 있는 공동체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의 질과 무게와 크기에 따라 국민의 행복의 질과 무게와 크기도 달라 지는것이며 국민행복의 질과 무게와 크기에 따라 국가의 힘과 브랜드 와 국격의 가치도 달라 지는것이다. 즉 국격과 국민의 품격은 비례 하는 것이며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격과 국익을 최우선 해야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고 이웃과 지녀와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국가와 국민은 수레의 양바퀴와 같은 운명공동체이며 영광과 책임도 함께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인간다운 참다운 성공과 행복의 가치를 느낄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을 따로 생각 한다든지 별개로 생각하므로 국민과 국가의 의무와 책임이 함께 있다는것을 망각 할때가 있다. 그리고 국가와 정부와 동일하게 생각한다. 정부는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일정기간동안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사실을 충실히 이행할따만 유효하다.그러나 국가와 국민의 존재
KBS 시사교양 방송 ‘추적 60분’에서는 1975년 1월 5일생 일란성쌍둥이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들은 현재 미국 롱아일랜드 교수 크리스티와 한국 대구의 무속인(점쟁이) 최윤정 무당으로서 각각의 운명을 살고 있다. 이 방송에서는 사주팔자 운명을 믿느냐 운명을 안 믿느냐를 논하며 한날한시에 태어난 일란성쌍둥이 자매의 전혀 다른 삶과 오늘의 직업과 모습을 재조명 하였다. 언니의 본명은 최재숙이고 미국이름은 크리스티이다. 친부모에게 버려져 수녀의 도움으로 보육원을 거쳐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새로운 부모를 만나 열심히 공부하는 착한 학생으로 심리학교수가 되었다. 한편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동생 최윤정은 신 내림과 오방기 깃발로 타인의 운명을 점치는 무당이 되었다. 이들의 사연과 관련하여 유명한 심리학교수를 비롯하여 미래예측학 교수로서 사주팔자 명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유명 역술인이 나와서 두 사람의 운명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그들의 삶과 현재의 모습이 다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신기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한글음파이름학이론으로 볼 때 아주 기초적인 설명일 뿐이다. 바꿀 수 없는 운명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 운명이
국민의 마음은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고 생활고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청년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을 꿈꾸며 활동하는 예비후보들은 과연 역사의식과 철학이 있으며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하는 의심이 든다. 못마땅해 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와 한숨 소리는 늘어만 가고 있는데 구체적인 정책과 비전은 없고 상대후보 비난과 비방으로 흠집만 내고 있는 듯하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자랑보다 상대후보 비난만 하는 지지자를 보니 뜻있는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역사의식과 철학이 있는 대통령이 그리워지는 요즘 해방 76년이 되었는데도 교육부는 일본식민지 정책을 위해 일본총독부에서 100년 전에 만든 조선사를 아직까지 정설로서 초등학교부터 가르치고 있다. 식민사관 사대사관 사학자와 공직자를 청산하지 못한 대통령을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한국대통령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으며 이를 방관하는 진보주의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의 시민운동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상을 모르고 뿌리와 민족정신을 모르고 정체성과 자존심이
중국하면 언젠가는 아시아의 패권을 위하여 마지막 승부를 가려야 할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만 년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동이족 한민족 한국은 한족 중국과 아시아 패권을 위해 마지막 승부를 가려야만 한다. 5000년 전에는 한의 나라 한민족이 유라시아의 패권 국가였으며 고조선, 고구려, 고려 초기 즉 1000년 전까지만 해도 예, 맥, 한韓족의 동이족 한국대륙과 화족(한漢족) 중국대륙은 양대 강국으로 엎치락뒤치락하곤 했다. 지금은 빼앗긴 만주대륙과 잃어버린 상고사를 되찾기 위해 중국에 대해 고민한다. 그때마다 장개석총통과 훙커우(루쉰)공원에서 만난 중국인이 생각난다. 필자가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한 후 훙커우(루쉰)공원에 있는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어느 노 화가가 훙커우(루쉰)공원의 길에서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는 그림과 글을 길바닥에 그리고 쓰는 것을 보았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며 30년을 넘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반복하고 있으며 아마 죽을 때까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화가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윤봉길 의사라고 말한다. 1932년 4월 29일 훙커우(루쉰)공원에서는 일본군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
“나는 너희 임금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거늘 어찌 너희들이 감히 내게 무례 시 하느냐.” 이봉창은 1932년 7월 19일 배심원 공판장에서 재판을 받을 때 한마디 호령만 내뱉았을 뿐 재판을 거부했다. 자신의 행동에는 떳떳함과 당당함, 그리고 올바름밖에 없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법원은 그해 10월 방청인도 없는 재판에서 저희끼리 판결문을 작성하여 사형선고를 내리고 1932년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형을 집행했다. 이봉창은 온갖 고문과 고통 속에서 죽음의 문턱에 닿는 순간까지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비굴하게 굴지 않고 대한민국독립을 부르짖고 애국하면서 뜨거운 죽음을 선택했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호령하던 1932년 7월 19일 이봉창의 모습이 선하게 스쳐가며 가슴을 뜨겁게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혼란과 대립 속에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노라면 오히려 그때의 조상들의 모습과 행동이 그리워진다. 이봉창은 1900년에 서울에서 태어나서 1932년 꽃다운 청춘시절에 아무런 죄도 없이 오로지 가난한 한국에 태어난 운명 속에 나라와 국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