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가 낳는 병폐 중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문제가 바로 음주운전 교통사고다. 지난 2018년 9월 25일 새벽,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던 윤 씨가 음주운전사고로 숨졌다. 이후 음주 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윤창호법이 시행됐다. 이러한 가운데도 매년 음주운전 사건·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음주운전을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사고는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처벌 수위도 높아지고, 시민들의 경각심도 과거에 비해 높아진 상황이지만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찰도 음주운전에 대한 제재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나 하듯 음주운전 사고는 나날이 늘고만 있다. 단속에 앞서 운전자 개개인의 인식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한 대목이다. 음주는 사람의 신체에 영향을 끼쳐 시야가 제한적이고 행동능력을 떨어트리는 등 판단능력을 떨어트린다. 따라서 음주운전을 하게 되면 교통사고 가능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음주운전 사고로 이어지는 유가족의 2차 피해는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될 경우, 혈중알코올농도 0
“도와주세요.”가 아닌 “살려주세요.”하고 절규하는 소상공인과 서민들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정부가 내리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다가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생존권을 위하여 울부짖는 소상공인과 서민을 보는 심정이 너무나 안타깝다. 오늘날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먹고 살기가 죽기보다 힘들고 어렵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본생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기초적 안정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 어느 호프집 주인은 개인적 이익을 포기하고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하여 2년이나 인고의 아픔을 떠안으며 정부만 믿고 가냘픈 희망으로 삶을 지탱하였다. 그러나 나아질 기미 없이 더욱 옭아매는 정부의 무책임 기약없는 기다림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전세방 전세금을 빼서 직원의 월급을 주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가슴은 찢어진다. 더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고 기자 회견장을 찾아 “도와주세요.”가 아닌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마지막 몸부림치는 소상공인의 간절한 호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으며 무책임한 정부와 정치인의 대책과 작금의 모습을 보면 분노하지 않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는 사대식민사관과 가난과 무지의 대물림으로 세계최고 빈국이고 외침으로 고통 받았다고 느꼈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국 한국인의 역사의식과 철학의 핵심가치는 한얼홍익인간정신이며, 교육과 나눔과 봉사를 통하여 세상을 바꾸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건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신념으로 18세 때 한얼민족연구회(현 한얼공동체, 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와 한얼학당(현 학교법인 한얼교육재단 한얼고등학교, 한얼노인대학, 한얼평생교육원)을 설립했다.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필자에게 통일주체대의원에 입후보하라는 권유가 들어왔고 그 자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마를 결심했다. 필자의 진심이 국민들의 마음에 스민 것일까. 감사하게도 전국 약 2,500명 중 최연소 가득률 1등으로 당선되었다. 물론 나눔과 봉사의 가치에 대한 확신과 신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 깊이 더 낮은 곳까지 밝은 빛을 전해주어야겠다고 결심하고 34세 때 11대 총선에 출마하게 되었다.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이 11명의 후보로부터 셀 수 없는 공격을 받았다. 결국 근소한 차이로 차점으로 낙선하게 되었
요즈음 언론 매체에서 많이 언급되는 용어 중의 하나는 아마 ESG (환경·사회·지배구조, Environment·Social·Govermance)일 것이다. 그럼 ESG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열광하고 있을까? 기존에 투자자가 기업에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기업의 매출, 영업이익 등과 같은 재무적인 요소들이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무적인 요소들은 기업의 보이지 않던 불공정한 운영방식이나 반사회적인 행위가 드러남에 따라 순식간에 기업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놓이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되었다. 그리하여 투자자들은 재무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ESG라는 비재무적인 요소까지 포함하여 투자의 판단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즉, 기업이 얼마나 친환경적이며, 얼마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담보하여 기업의 가치를 성장시키는지를 투자의 잣대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ESG는 기업에만 적용하여야 할까? 아니면 한 개인이나 공공기관, 나아가서는 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ESG의 개념이
민주주의는 공정과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보통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녀들과 달리 그렇지 못한 부모 밑에 태어난 자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불공정이라 생각한다. 진정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이며, 나쁜 부모는 어떤 부모인가? 필자는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천지만물의 이치이고 운명이다. 삶에 있어 어떤 부모이든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필자는 한 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18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2대독자로 계모 밑에 자랐지만 한 번도 부모를 원망한 적 없으며 오히려 자립심과 자주정신과 근면성실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조실부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양부모가 살아 계셨더라면 사랑을 독차지했을 터이다. 넉넉한 살림으로 평탄하게 지내며 신문배달이나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처럼 소중한 경험을 가지지도 못했을 것이며 오늘과 같은 꿈과 신념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보다 자신의 꿈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황제 부모를 두고 태어난 덕혜옹주는 어린 시절 호의호식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으나, 14살에 원하지 않게 궁궐을 떠나 일본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18세에 원치 않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보다 역사를 왜곡 날조한 사대식민사관 학자가 훨씬 더 무섭고 악한 이적행위이다. 나라를 빼앗기면 찾을 희망이라도 있지만 역사를 빼앗기고 잃어버리면 되찾을 희망조차 잃게 된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의 자손들은 부자로 호의호식하고 있다. 이병도 식민사학자의 아들은 서울대학교 교수, 손자는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이병도박사는 죽기 전 자신의 학설이 잘못되었다고 양심선언을 하였음에도 그의 제자들중에는 스승을 비판하고 대대로 조선총독부가 만든 왜곡 날조된 역사를 팔아먹으며 해방 75년의 지금까지도 매국행위를 일삼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로인해 한국과 한국인의 역사관이 무너지고 정체성과 자존심을 잃게 하며 점점 패망으로 치닫고 있으니 사대식민사관 학자와 공직자에게 반성과 참회와 성찰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이 반성하고 뉘우친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며 부전자전으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난다. 반면 명성황후의 반대편에서 저항하다 명성황후 저해사건에 동조하여 공을 세운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은 일본으로 도망가서 일본여자와 결혼하여 일본정부의 도움으로 살다
국가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필자는 한마디로 국가란 국민의 행복을 담는 그릇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국민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이다.그러므로 국가와 국민은 따로 생각할수 없고 따로 존재할수없는 한몸의 반쪽씩 찿이하고 있는 공동체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의 질과 무게와 크기에 따라 국민의 행복의 질과 무게와 크기도 달라 지는것이며 국민행복의 질과 무게와 크기에 따라 국가의 힘과 브랜드 와 국격의 가치도 달라 지는것이다. 즉 국격과 국민의 품격은 비례 하는 것이며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격과 국익을 최우선 해야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고 이웃과 지녀와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국가와 국민은 수레의 양바퀴와 같은 운명공동체이며 영광과 책임도 함께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인간다운 참다운 성공과 행복의 가치를 느낄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을 따로 생각 한다든지 별개로 생각하므로 국민과 국가의 의무와 책임이 함께 있다는것을 망각 할때가 있다. 그리고 국가와 정부와 동일하게 생각한다. 정부는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일정기간동안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사실을 충실히 이행할따만 유효하다.그러나 국가와 국민의 존재
KBS 시사교양 방송 ‘추적 60분’에서는 1975년 1월 5일생 일란성쌍둥이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들은 현재 미국 롱아일랜드 교수 크리스티와 한국 대구의 무속인(점쟁이) 최윤정 무당으로서 각각의 운명을 살고 있다. 이 방송에서는 사주팔자 운명을 믿느냐 운명을 안 믿느냐를 논하며 한날한시에 태어난 일란성쌍둥이 자매의 전혀 다른 삶과 오늘의 직업과 모습을 재조명 하였다. 언니의 본명은 최재숙이고 미국이름은 크리스티이다. 친부모에게 버려져 수녀의 도움으로 보육원을 거쳐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새로운 부모를 만나 열심히 공부하는 착한 학생으로 심리학교수가 되었다. 한편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동생 최윤정은 신 내림과 오방기 깃발로 타인의 운명을 점치는 무당이 되었다. 이들의 사연과 관련하여 유명한 심리학교수를 비롯하여 미래예측학 교수로서 사주팔자 명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유명 역술인이 나와서 두 사람의 운명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그들의 삶과 현재의 모습이 다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신기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한글음파이름학이론으로 볼 때 아주 기초적인 설명일 뿐이다. 바꿀 수 없는 운명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 운명이
국민의 마음은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고 생활고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청년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을 꿈꾸며 활동하는 예비후보들은 과연 역사의식과 철학이 있으며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하는 의심이 든다. 못마땅해 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와 한숨 소리는 늘어만 가고 있는데 구체적인 정책과 비전은 없고 상대후보 비난과 비방으로 흠집만 내고 있는 듯하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자랑보다 상대후보 비난만 하는 지지자를 보니 뜻있는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역사의식과 철학이 있는 대통령이 그리워지는 요즘 해방 76년이 되었는데도 교육부는 일본식민지 정책을 위해 일본총독부에서 100년 전에 만든 조선사를 아직까지 정설로서 초등학교부터 가르치고 있다. 식민사관 사대사관 사학자와 공직자를 청산하지 못한 대통령을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한국대통령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으며 이를 방관하는 진보주의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의 시민운동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상을 모르고 뿌리와 민족정신을 모르고 정체성과 자존심이
중국하면 언젠가는 아시아의 패권을 위하여 마지막 승부를 가려야 할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만 년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동이족 한민족 한국은 한족 중국과 아시아 패권을 위해 마지막 승부를 가려야만 한다. 5000년 전에는 한의 나라 한민족이 유라시아의 패권 국가였으며 고조선, 고구려, 고려 초기 즉 1000년 전까지만 해도 예, 맥, 한韓족의 동이족 한국대륙과 화족(한漢족) 중국대륙은 양대 강국으로 엎치락뒤치락하곤 했다. 지금은 빼앗긴 만주대륙과 잃어버린 상고사를 되찾기 위해 중국에 대해 고민한다. 그때마다 장개석총통과 훙커우(루쉰)공원에서 만난 중국인이 생각난다. 필자가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한 후 훙커우(루쉰)공원에 있는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어느 노 화가가 훙커우(루쉰)공원의 길에서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는 그림과 글을 길바닥에 그리고 쓰는 것을 보았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며 30년을 넘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반복하고 있으며 아마 죽을 때까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화가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윤봉길 의사라고 말한다. 1932년 4월 29일 훙커우(루쉰)공원에서는 일본군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